읽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기욤 뮈소 장편소설)

피넛버터브레드 2020. 5. 8. 19:40

독서 편식 고치기 첫번째.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추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독서 편식이 지금보다 더 심했던 때여서, 어지간하면 소설책은 잘 읽지 않았고, 이 책 또한 그런 소설책 중 하나였다.

 

이번엔, 늘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 '골고루 읽기'를 강제하기 위해 가입한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 때문에 이 책을 읽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도 독서 편식은 쉬이 낫는 병이 아닌지, 재택근무, 그리고 5월 초 꿀연휴라는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서야 다 읽었다.

 

동명의 영화가 수 해 전 개봉했지만, 보지 않았다.

이미 그 때만 해도 유행처럼 '시간여행'이란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가 나오던 시기의 끝물이었기 때문에 또 시간여행 이야기야?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그렇지만, 그 드라마만 보지 않았을 뿐, 어려서 백투더퓨쳐, 시간탐험대부터 나비효과,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터널, 시그널 등 다양한 시간여행 소재의 콘텐츠를 많이 접했다.

꾸준하게 시간여행 소재의 콘텐츠가 나오는 걸 보니 인간에게 시간이란 가상세계에서 만이라도 뛰어 넘어 보고 싶은 대상인가 보다.

 

이 책의 내용은 암에 걸려 죽을 날이 머지 않은 한 남자(엘리엇)가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알약을 얻게 되고, 그걸 통해 그 소원을 이루고 과거를 바꾸는 것이 큰 줄거리다.

 

엘리엇이 일찍 죽어버린 연인을 다시 보는 것이 소원이라 이야기했을 때, 그런 사람이 생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아님 일찍 죽어버린 연인이 없어서일지도.)

그런 인연이 생에 한번쯤 있었다는 것을 부러워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인연을 너무도 이른 나이에 잃었음을 안타까워 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또, 그 정도로 후회되는 과거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엘리엇도 후회되는 과거(잃어버린 연인 일리나)가 있는 동시에, 잃고 싶지 않은 과거이자 현재인 딸 앤지로 인해 선뜻 과거를 바꾸지 못하지만. 지우고 싶은 과거만 가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일은 대체로 부정적인 기억이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 속상했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같은.

추억이 아닌 기억은 오히려 현재의 나를 좀먹는 것 같기 때문이다.

후회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 최대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과거로 가는 알약을 얻게 되면 난 무엇을 할까? 하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 곧장 떠오르는 대답이 없었다.

언제로 돌아가서 무엇을 바꾸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 이전에, 과거를 바꾸어야 하는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 것 같다.(차라리 미래로 가는 알약을 한알만 주시면..)

 

어찌되었든, 과거로 돌아가 연인 일리나를 살려내는 데 성공하지만, 과거의 자신에게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해 현재의 자신을 살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 엘리었이 놀라웠다. 왜?

일리나를 단 한번 보고 싶은 간절한 소원은 있으나 담배를 계속 피워대 폐암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는 걸까.

예순이면 죽기엔 너무나도 이른 나이인데.

 

또한, 마지막에 남은 단 하나의 알약을 발견한 주인공의 친구 매트가, 엘리엇를 구하는 데에 그 알약을 주저없이 쓰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라웠다.

바뀌어 버린 과거에서 30년 동안 데면데면 하게 지낸 친구였으면서도 30년 전의 10년간 매트에게 엘리엇이 어떤 존재였길래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누군가가 있다면, 더 행복한 인생일 것 같다.

 

아직 회한이 남은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적은 내 나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바로잡고 싶은 실수,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 회한, 후회가 있다고 대답하게 될까?

이에 대해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다만, 10년, 20년, 30년 후에도 '없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몫인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책 제목은 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일까...